신약 성경통독

천하게 쓰임받는 이의 한탄과 억울함은 죄일까? 바로가 완악한 이유 [로마서 9-11장]

jwantplan_bible_story 2024. 12. 9.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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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자녀

  •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님
  • 약속의 자녀가 참 자손으로 여겨지리라
  • 사라의 아들, 리브가의 두 쌍둥이,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택하심이라는 원리를 따라 세우신 하나님의 계획이 살아있게 하시려고
  • 사람의 행위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시는 분께 달려있음
  • 그렇다고 하나님이 불공평하신 분인가, 그럴 수 없다
  • 사람의 노력에 달려있는 것이 아님
  •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있다
로마서 9장 15절 (개역개정)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로마서 9장 17-18절 (개역개정)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천하고 악역으로 쓰임받는 사람"이 하나님께 한탄하면 죄일까?

한탄은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됨 하나님께 한탄하거나 자신의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에서 나옵니다. 시편에서도 다윗이 종종 하나님께 자신의 상황을 한탄하며 울부짖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의 한탄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신뢰하며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려는 마음인가, 아니면 이해를 구하려는 마음인가?
한탄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마음이라면,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성장시키는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
로마서 8장 28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말합니다. 이는 심지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역할이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이 여전히 역사하고 있음을 믿으라는 의미입니다.

천한 역할이 끝이 아님 바로의 경우처럼 어떤 역할이 "천한"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상황을 통해 자신의 영광과 뜻을 드러내십니다.
한탄의 순간이 오히려 하나님과의 깊은 대화를 통해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결론
하나님께 자신의 역할이나 삶에 대해 한탄하는 것이 무조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한탄이 하나님께 대한 반항이 아니라 이해와 신뢰를 구하는 과정이라면, 하나님은 그 마음을 받아주시고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을 이해하시며,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도 함께 하십니다.

 


 

바로가 평소 하나님의 거부하고, 성격이 완악했기때문에 그런 역할로 쓰신걸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쓰시기 위해 바로의 성격을 온화하게 하지 않으셨을까?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고 하지만
성격은 타고나는 부분이 있는데..

개인의 해석에 달린것인가..?

 
바로의 완악함과 하나님의 주권은 성경에서 매우 깊은 신학적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주제입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몇 가지 중요한 관점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1. 바로의 성격과 하나님의 쓰심

성경은 하나님께서 바로를 "완악하게 하셨다"고 말하지만, 바로 자신도 자신의 선택을 통해 완악함을 드러낸 것으로 보입니다. 출애굽기에는 바로의 마음이 완악해졌다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두 가지로 묘사됩니다:

  • 바로 스스로 마음을 완악하게 함 (출애굽기 8:15, 8:32)
  •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심 (출애굽기 9:12, 10:1)
출 8:15 그러나 바로가 숨을 쉴 수 있게 됨을 보았을 때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더라 출애굽기
출 8:32 그러나 바로가 이번에도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이 두 가지 관점은 서로 상충되기보다는 동시에 작동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의 타고난 성격이 완악함을 포함했을 수 있지만, 이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사용된 것이며, 그의 자유의지도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았습니다.

 

2. 하나님께서 온화한 성격을 주지 않으신 이유

하나님께서 바로를 온화한 사람으로 바꾸지 않으신 이유는, 그의 완악함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드러내는 계획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로마서 9장 1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바로의 완악함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이방 세계에 알리려는 목적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3. 자유의지와 성격

인간의 성격은 타고난 요소(유전적 성향)와 환경적 요소의 영향을 모두 받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주권이 신비롭게 조화를 이룬다고 가르칩니다. 즉, 바로가 "완악한 성격"을 타고났더라도, 그는 자신의 선택으로 그 성격을 드러냈고,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사용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무시하고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과 행동을 자신의 계획에 따라 섭리하시는 방식입니다. 바로의 성격이나 행동이 그 자체로 하나님의 계획을 완벽하게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4. 개인 해석에 의한 차이

이 문제는 해석의 여지가 많습니다. 기독교 신학 안에서도 다양한 관점이 존재합니다:

  • 칼뱅주의 관점: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바로의 완악함을 작정하시고 사용하셨다.
  • 아르미니우스주의 관점: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선택을 미리 아시고 그 선택을 자신의 계획에 맞게 사용하셨다.
  • 중재적 관점: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가 동시에 작동했다.

어떤 해석을 선택하든, 중요한 점은 하나님의 뜻은 궁극적으로 선하며, 그의 계획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다는 사실입니다.
 

결론

바로의 완악함은 타고난 성격의 일부일 수 있으며, 동시에 그의 선택과 행동에 의해 강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완악한 도구"로 사용하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주권에 따른 것이며, 이는 단순히 바로 개인의 선택에 의해 좌우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큰 계획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런 주제는 단순한 결론보다는 신앙적 고민과 기도, 묵상을 통해 하나님과 더 깊이 교제하게 만드는 기회로 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 믿음으로 이루는 구원

  • 예수님이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이루셨기 때문에, 이제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있다는 뜻
  • 율법의 기능이 끝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그 목적이 완성되었음을 의미
  •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인간이 스스로 하늘에 올라가서 그리스도를 모셔오려는 것처럼, 자신의 노력이나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태도, 하지만 예수님은 이미 하늘에서 내려오셨음(성육신)
  •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인간이 스스로 무저갱(죽음의 영역)으로 내려가 예수님을 다시 살리려는 시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미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음(부활)
  • 인간의 행위로 구원을 이루려는 헛된 시도를 비유적으로 설명한 것
  • 구원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통해 주어지는 것
로마서 10장 9-10절 (개역개정)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믿음, 들음, 그리스도의 말씀

  •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
  •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말씀이 땅 끝까지 퍼졌다 (Their voice has gone out into all the earth, their words th the ends of the world)
  • 이사야: 찾지 않던 사람들에게 만나주고
  • 이사야: 나를 구하지 않던 사람들에게 내가 나타났다
  • 이스라엘에 대하여: 순종하지 않고 거역하는 백성에게 종일 손을 벌렸다

 
 

 

 

이스라엘의 남은 사람

  •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다
  •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7천 명을 남겨 두셨다
  •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다
  • 완악해진 사람: 혼미한 영을 주셔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함
  • 왜?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거부하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으로 영적인 어두움에 빠진 상태
  • 하지만 완전히 망하지 않았음: 오히려 그들의 죄 때문에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렀고, 이스라엘은 이방인을 시기함
  • 이스라엘의 범죄: 세상에 풍성한 복을 가져다주었음
    그러니 잘려나간 가지를 향해 자랑하지 마라
  • 자랑하는것이 맞지만 자만하지말고 오히려 두려워하라
로마서 11장 20-24절 (개역개정)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그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하심이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물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네가 원 돌감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은즉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으랴

 


이스라엘의 회복

  •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하나님께 돌아오기까지, 이스라엘 중에 얼마는 완악한 채로 있게 된다
  •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것
  • 복음의 관점: 이스라엘은 여러분 때문에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음
  • 선택의 관점: 조상들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사람들
  • 하나님께서는 선물을 주시고 부르신 후에 무르는 법이 없다
로마서 11장 29절 (개역개정)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후회하심이 없다: 하나님의 은사(선물)와 부르심(구원 계획)이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며, 하나님은 구원의 약속과 목적을 결코 철회하거나 바꾸지 않으신다는 것을 강조한 것
  • 후회, 한탄: 하나님이 인격적이고 감정이 있으신 분임을 드러내는 동시에,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반응을 나타내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심과 주권을 잃으셨다는 의미는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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